5.16.2014

입다물기

얼마 전 학원 앞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다가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을 보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컵라면 두 개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이상한 할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어
학원으로 뛰어갔다.

한 이십 분쯤 지났을까. 친구와 커피를 마시려고
다시 밖으로 나갔더니 학원 앞 병원 계단에서 
조금 전에 보았던 할아버지가 컵라면을 드시고 계셨다.
그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너무 안돼 보였다.

그때 건물 경비아저씨가 라면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를
발로 차며 "야, 저리로 가. 저리로 가란 말야" 하고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의 발길질에 밀려
라면 국물이 조금씩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선 그 아저씨에게 왜 그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비겁하게도 나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와서도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대항하지
못한 내 자신이 싫었다. 기어이 나는 수업을 마치기도
전에 가방을 챙겨 학원을 나왔다.
그런데 아까 그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던 계단에는
미처 다 드시지 못한 컵라면 그릇이 엎질러져 있었다.

난 과연 무엇을 배우는가?

<새벽편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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