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5.2017

나이키,일기장속글





















여행 갈때쯤
나이키 세일때 산 신발 왔는데
발이 조금 아파서 +5 교환 하려고했는데
택배박스 싸기 귀찮아서
그냥 신는중
반품을포기한날 운동하다가
발이 터지거나 신발이터지ㄱ거나
둘중 하나는 터질것 같았지만
둘다 무사
(늘어날꺼같죠? 글을쓰고있는 지금(9/5)까지도
안늘어나요^^)
덕분데 사이즈공포증생김












요즘 나이키 이야기를 덧붙히자면


적금들라구요.
인생첫캠핑을 할예정인데
텐트 챙겨가야되는지고민








뱅기타기전에 직구로 결제할까말까 고민많이했는데
국내발매소식듣고 직구는맴을접음
7일은 9시출근인걸로
플라이니트로 인해 생긴 사이즈공포증으로
맨우먼의 경계인 250살듯









같은날 출시되는 97울트라 전잘모르겠음



























에피소드가 왠만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커플만나서 운동후 허콤






























자상함.




























후우루로ㅓ오로~~
온통너~














우영미 18ss
쌀이없어도 꽃을 사오시던 
아버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우영미
그녀의 옷을 볼때마다 자꾸 떠오른다.
쌀..꽃..냉맨..








아워레가시 18ss






















아니..
언니..





숨이 멎어버리기.


















하노이카페에서-
떠남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그리고 나 또한 떠남으로 인하여 조금 달라지길 원하는 나와 일상을 위하여 부단히 생각을 끌어안아버린다. 오랜시간 회사와 지나간 인연, 그리고 앞둔 여행에 몰두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잊은 탓인지 생각은 어떠한 발화점까지 도달하기가 어려웠고, 지금의 생각이 그 발화점 근처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쨋든 꽤나 풍요롭고 여유로운 여행이였다. 짧은 휴가로 인해 여유롭고 풍요로운 여행을 원했지만, 여행 마지막에서야 자유로운 핸드폰의 사용, 편안한 호텔, 부유한 식사. 이게 진정 내가 그리던 여행인가 싶다. 그저 한국에서도 할수 있는 일들을 자유로운 옷차림과 이국적인 풍경안에서 하는 느낌이 든다.









고작 두달가량을 안만났을뿐인데 평생 모르는 사람처럼 소식하나 모르는







여행 중 혼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먹거나 수영장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
복잡한 머리속과 대조되는 풍경.

익숙한 풍경 익숙한 하루지만 그래도 여행 전 조급함도 불안함도 이젠 없어 좋다.
여행으로 인한건지, 여행으로 인했던것인지, 쨋든 지금은 날카로운 날이 조금은 둥글게 마모된 느낌.
그렇게 다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늦은 저녁을 소화시키기 위해 전처럼 찾은 모교 운동장
여행때 새긴 말로인해 나의 중학생 시절이 지금인냥 떠올려도 보고 반쪽인 달의 의문도 품어보는 썩 괜찮았던 시간들속 도와달라는 노래는 썩 괜찮던 나를 썩 괜찮지 않게 만들어줬다.
마주편 창가의 불이 전보다 더 커져있다.









뭐. 여행 후 죄스러운 먹방으로인해 강도높아진 운동을 조금씩 해오곤 있지만
그전만큼의 다이어터 정신은 없어졌다.
가을바람 불어오면서 가을신상들도 불어오고 나이키도 불어오고 있어서
그것들을 품에 가득 안을수 있게 준비하고 싶은데
맛있는것들을 너무 많이 맛본탓에 식탐줄이기가 쉽지 않다.
또 잘먹고 잘자고있으면서 감기마저 걸려버려서 
감기핑계로 더 잘먹고 잘자는 삶을 지내는 중이다.
감기앓이와 죄스러운먹방과 회사, 잠깐의 운동이
내 평일의 전부지만 그 사이사이 짬을 내어 하는 쇼핑의 대부분이
기본 7일 배송지연이라 뭔가 안산거 같은 기분이 자꾸 들어서
자꾸 뭔가 사고싶다. 쓔뜨삐있!
좀더 물욕게이지 상승시켜서 현금으로 보유중인 여행용돈+회사휴가비들고
불금밤 동댐탐방으로 발사해야겠다.

여행전보다 좀더 나 자신에게 여유로워지고,
한 계절이가고 새로운 계절이 와서 그런지
꽃들이나 하늘이같은 주변풍경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전에는 그런것들을 보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대곤 했는데,
요즘은 그저 짧은 생각만으로 그친다.
가을 꽃들의 색은 어쩜 그리 내맘에 쏙드는지..
저런 색의 니트를 가지고 싶다 뭐이런..
하늘이 참 높다. 집가는 버스 창가 선셋은 더욱 아름다워졌고,
가을이왔다.














이번 여행동안 곱씹고 곱씹었던 글


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몇 장의 편지를 쓰자
찬물에 머리를 감고
겨울을 나는 법을 이야기하자
가난한 시인의 새벽노래 하나쯤 떠올리고
눅눅한 가슴에 꽃씨를 심자
얘야, 우린 너무
나쁜 습관처럼 살아왔어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길은 끝나지 않는데
늘 채워두는 것 만큼 불쌍한 일이 어디 있어
이제 숨을 좀 돌리고
다시 생각해보자
큰 것만을 그리느라
소중한 작은 것들을 잃어온 건 아닌지
길은 길과 이어져 서로 만나고
작은 것들의 바로 곁에 큰 것이 서 있는데
우린 바보같이 먼데만 바라봤어
사람 하나를 만나는 일이 바로
온 세상을 만나는 일인데
조그만 나무 한 그루가
온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데
우린 참 멍청했어
술잔에 흐르는 맑은 도랑에 대해
왜 이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지
마주 않을 시간마저 없었는걸
그래 얘야, 오늘은 우리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자
겨울이 오기 전에

,백창우














텀블러에서 처음접하고
그대로 퍼오기로 내 텀블러 첫페이지를 장식하고있는
당연히 블로그에도 올렸겠거니 했는데 없어서



예전에 어렴풋이 들었던 ‘실존주의'가 다시 생각나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다가 이런글을 발견하였다.

Q: 실존주의란 무엇인가요?
도덕시간에 실존주의란 말이 나왔는데요
그 때 선생님께서
“칼은 만들 때부터 용도가 정해지지만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샤르트르
라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하게 그렇다!라고 말해주신게 아니라 그냥 흘려가는 이야기로 해주셔서 ㅠ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ㅠ;;
실존주의라던데…
실존주의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샤르트르가 한 말이 맞나요??
위의 말이 실존주의(또는 샤르트르)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요??

A: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
그럼 그에 말에 우리가 이렇게 질문합니다.
’ 대학을 왜 꼭 가야하는거죠? ’
그럼 부모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 다들 그러잖아. ’

우리가 살고있는 오늘날은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는 ’ 그런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 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단 한명도 그 말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삽니다.

고등학교 다닐때에는 공부하고, 대학교 다닐때에는 학점 잘받고 군대갔다오고 연애하고 술먹고, 그리고 대학 졸업하면 취업준비하고 그렇게 취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누군가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고 나중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되고 그리고 죽습니다.

이게 우리가 보고 또 살고있는 우리의 삶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TV 처럼 행동하고, TV 처럼 사랑하고, TV 처럼 생각하고, TV 처럼 아이를 기르고, TV 처럼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찾을 수 있는 ’ 개성 ’ 이란 그저 얼굴 생긴게 다르다는것 뿐이지만 요즈음엔 성형수술 등의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이마저도 모두가 ’ 똑같이 이쁜 ’ 그런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한번쯤 사시면서 누군가 글쓴이님에게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 라고 물어본 기억이 있을겁니다. 이런 질문을 받아봤다면 아시겠지만 척보기엔 쉬어보이지만 결코 쉽지않죠. 때로는 그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우리가 겨우 생각해서 말한 것이 우리의 소속이나 직업 따위죠. 이런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우리 자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도없이 많은 벽에 부딪혀야하고 그 벽을 넘어서기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고등학교땐 공부를 하고, 대학교에선 연애를하고, 학점을 받고, 군대를 가고 그리고 돌아오면 취업하고 그리고 결혼하고 늙고 그렇게 죽는다. 우리는 이렇게 사는 순간에 우리가 할일들에 몰두하고 메달리느라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평생 ’ 난 ( ) 이다 ’ 라는 한 줄의 괄호를 채우지 못한채 살아가죠. 샤르트르는 그런 우리의 삶을 비판하는 것 입니다.

인간은 각 개인마다 모두가 다르고 모두가 다르기에 우리는 각 개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우리만의 고유성과 개성을 실현하면서 살지 못합니다. 모두가 가는 길이기에 우리도 가고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것에 대해서 책임지기를 두려워하기에 진실로 참된 ’ 나 ’ 를 찾지 못하고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 입니다.

그럼 이제 글쓴이께서 쓰신 “칼은 만들 때부터 용도가 정해지지만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해석해볼까요? 샤르트르의 말중에 가장 유명한 말은

’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 ’ 입니다. 이 말 뜻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물들은 그 사물이 생겨나기전부터 우리의 머릿속에 그 본질이 만들어지고 계획됩니다. 우리가 ’ 칼 ’ 이 필요하다고 하다면 그 칼의 성질은 분명 무언가를 자르거나 벨 수 있는 날카로움을 가진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칼은 ’ 무언가를 자르거나 벨 수 있는 날카로움을 가진 것 ’ 이라는 본질을 갖고 세상에 나타나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은 아닙니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집니다. 부모님께 여쭤보십시요.

’ 왜 저를 낳으셨나요? ’

부모님은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으십니다. 왜냐면 우리를 낳는데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낳아집니다. 그리고 태어난 후의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에 직면하고 그 선택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본질이 만들어집니다.

오바마를 예로 들어봅시다. 오바마의 부모님이 오바마를 임신할때에 머릿속으로 ’ 미국은 단 한번도 흑인 대통령이 태어나지 않았으니 이번에 흑인 대통령을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 ’ 라고 생각하고 오바마를 낳았을까요? 아닐껍니다. 오바마 자신은 그냥 세상에 던져졌을 뿐이고 그렇게 태어났을뿐 입니다. 그렇게 오바마는 세상에 던져진 후 자신의 삶에서의 수도없는 선택을 하면서 ’ 대통령 ’ 이라는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낸 것 입니다.

이처럼 샤르트르는 우리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인생은 B(brith) 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삶은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의 그 선택. 그 선택이 바로 우리의 삶이고 ’ 난 ( ) 이다 ’ 라는 문장속 괄호에 들어갈 말이라는것 입니다. 샤르트르는 이처럼 우리 자신이 가진 고유한 삶의 성질을 구현시키고 인생에 있어 끊임없이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또 친구가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서 책임질 줄 알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그 것이 바로 ’ 실존주의 ’ 입니다.

좋은 답변이었길 바랍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