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2015




당신이 생각보다 어두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자주 나뭇잎에 매달려 끈질기게 초록, 초록이 되려고 애썼던 일이요. 나는 다 기억해요. 당신이 내 앞에서 문고리처럼 도드라졌던 것. 아주 딱딱하고 화난 것처럼. 나는 놀라서 당신을 비틀어 잡았고, 문이 열였고, 그때부터 당신은 내 속으로 수없이 이양되었죠. 나중에는 열린 문을 어떻게 닫아야 할지 몰라 오래 방황했어요. 당신을 비우려고, 비우려고 애를써도 잘 안됐던 것. 이양된 당신이 너무 많았기 때문 일 수도, 혹은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일 수도, 혹은 당신이 나를 멀리서 너무 꽉 붙들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맞아요. 난 이파리가 거센 비를 피하지 못해 휘청거렸듯이 나도 한 시절 당신에게 호되게 빠져 휘청거린 적 있었네요. 그때 나를 누군가 번쩍 들어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다면, 아마 그 사람을 증오 했을 거예요. 누가 사랑에 빠진 자를 말릴 수 있겠어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나는 사람마다 각자 경험하고 지나가야 할 일정량의 고유 경험치가 존재한다고 믿거든요. 다 겪지 못하면 다음으로 못 넘어가는 거죠. 당신을 사랑하고, 또 헤어지던 순간은 꼭 필요한 경험이었어요. 그 일을 나는 긍정합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사람을 일컬어 "한밤중에 펼쳐진 책"이라고 했다는데, 나도 당신도 서로의 밤에 침입해 어느 페이지부터랄 것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열렬히 서로를 읽어나간거겠죠. 내게는 사랑에 대한 첫 독서가 당신이란 책이었고, 행복했고 열렬했어요. 어느 페이지는 다 외워버렸고, 어느 페이지는 찢어 없앴고, 어느 페이지는 슬퍼서 두 번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즐거웠습니다. 이제 나는 사랑이 흙 속 깊이 손을 파묻어 사랑의 뿌리로 삼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 피어나는 일이라고 믿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런 사랑은 평생에 딱 한번뿐일 테니까요.

소란, 박연준
























christophe lemaire










댓글 없음:

댓글 쓰기